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경북 영천의 한 복숭아밭에서 분홍색 트럭 한 대가 쉴 새 없이 오간다. 트럭 주인은 귀농 12년 차 농부 김은희(54) 씨로, 콧노래를 부르며 복숭아밭으로 달린다.
남편의 사업 부도로 모든 걸 잃고 돌아온 고향에서 은희 씨는 복숭아를 키우며 다시 희망을 일궈냈다. 복숭아를 따고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후배 농업인들의 멘토 역할까지 맡으며 하루를 채운다.
24시간이 모자라는 은희 씨의 밭에는 특별한 일꾼들이 있다. 60년 경력의 농부 선생님 엄마 최순조(76) 씨와 새내기 농사꾼 딸 김미래(29) 씨가 그 주인공이다.
엄마에게서 딸로, 딸에게서 손녀로 농사의 시간이 이어졌다. 복숭아밭에 함께 뿌리내린 세 모녀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세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여름 수확철을 건넌다.
복숭아 향기 가득한 밭에서 복사골 세 모녀의 달콤한 여름이 시작된다. 수확과 선별, 판매와 체험까지 한 농장에서 이어지는 만큼 세 사람의 손길도 하루 종일 엇갈리고 다시 모인다.
8월 31일에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443회 ‘복사골 모녀 삼대’ 1부에서는 김은희 씨와 최순조 씨, 김미래 씨가 함께 복숭아 수확철을 보내는 모습이 공개된다.
절망 끝에서 돌아온 딸, 복숭아 농부가 되다


뜨거운 태양 아래 복숭아가 무르익는 계절, 은희 씨의 하루는 이른 새벽에 시작해 자정이 넘어서야 끝난다. 여문 복숭아를 따고 크기별로 선별해 포장한 뒤 주문 전화를 받고 택배를 보내는 일까지 이어져 쉴 틈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더운 여름이지만 은희 씨에게는 일 년 수고의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다. 최근 농장에서는 10개가 넘는 복숭아 품종을 키우며 시기마다 다른 열매를 수확하고, 가지에서 충분히 익은 복숭아를 직접 따는 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12년 전만 해도 은희 씨는 농부가 아니었다. 울산에서 덤프트럭 건설업을 하던 남편 김진곤(55) 씨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꾸렸고, 은희 씨 역시 울산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생활해 왔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이 부도나며 가족의 삶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은희 씨는 두 아이를 떼어놓고 남편과 함께 고향 영천으로 돌아왔고, 갈 곳 없던 부부를 받아준 것은 부모님이 평생 일군 복숭아밭이었다.
쓰러져 가는 빈집을 고쳐 살고 남의 밭일까지 하며 악착같이 버텼다. 과거에도 순조 씨는 형편이 어려워진 딸 부부에게 농사일을 가르쳤고, 은희 씨는 새벽부터 밤까지 복숭아 농사를 배우며 재기의 길을 찾았다.
그렇게 일하기를 어느덧 12년,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왔던 딸은 자신의 농장을 일군 농부가 됐다. 품종을 늘리고 판매 방식을 넓히며 수확한 복숭아를 직접 소비자에게 알리는 일까지 손에 익혔다.
복숭아보다 달콤한 세 모녀의 여름


새벽부터 시작해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지는 고된 농사일에도 은희 씨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 두 명이 있다. 60년 경력의 베테랑 농부이자 엄마인 최순조(76) 씨와 2년 차 초보 농사꾼인 딸 김미래(29) 씨다.
순조 씨는 평생 농사일을 해온 탓에 무릎관절염 수술까지 받아야 할 지경이지만 밭일을 놓지 않는다. 딸 은희 씨가 일 좀 그만하라며 잔소리해도 소용없고, 급기야 은희 씨 몰래 복숭아를 팔러 이른 새벽 오일장까지 나간다.
순조 씨의 억척스러운 농사 인생은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스무 살에 농사짓는 집에 시집와 7남매를 키웠고, 자식들을 위해 논을 갈아엎어 과수원을 만들며 복숭아 농사의 기반을 일군 세월이 지금의 밭으로 이어졌다.
못 말리는 엄마의 열정에 은희 씨의 속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힌다. 힘든 딸을 돕겠다고 몸을 아끼지 않는 순조 씨와 이제는 엄마의 건강을 먼저 걱정하는 은희 씨의 마음이 같은 밭에서 부딪힌다.
한편 귀농 전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미래 씨는 홀로 지내며 야위어 가는 모습을 걱정한 엄마의 부름을 받고 2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세 모녀는 한 밭에서 수확과 선별, 포장 일을 나누며 농사일을 함께하고 있다.
미래 씨는 새내기 농부지만 할 말은 한다. 할머니에게도 포장은 예쁘게 해야 한다며 잔소리하는 MZ 농부로, 오랜 경험을 앞세우는 할머니와 쉼 없이 움직이는 엄마 사이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농사를 배워간다.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결국 함께 밭으로 향하는 세 모녀다. 수확철의 고된 노동과 세대 차이가 한꺼번에 겹친 가운데 모녀 삼대는 이 뜨거운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복숭아 밭에서 미래를 그리다


절망 속에서 다시 찾은 복숭아밭이 은희 씨를 환영만 해준 것은 아니었다. 귀농 초기에는 거센 태풍에 애써 키운 복숭아를 한순간에 잃기도 했지만, 품종을 바꾸고 판로를 개척하며 실패 속에서 다시 일어섰다.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복숭아밭을 안정궤도에 올려놓은 은희 씨는 농촌에서 또 다른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에게 농촌의 가치를 알리는 체험농장을 만들기로 하고 관련 교육과 정부 지원 사업을 찾아 기반을 하나씩 마련했다.
농장은 단순히 복숭아를 따는 곳을 넘어 수확한 과일로 청과 케이크를 만드는 체험까지 이어가는 공간으로 넓어졌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농장을 찾고, 복숭아를 직접 보고 만지고 맛보는 과정이 농촌 체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는 복숭아 수확과 판매 과정을 경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학생들이 직접 복숭아를 따고 온라인 판매 과정을 체험하며 농산물이 생산된 뒤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배움에 대한 은희 씨의 열정도 남다르다. 7남매로 자라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일찍 접어야 했던 공부를 다시 붙잡고, 농사일을 마친 늦은 밤이면 책상 앞에 앉아 박사 논문을 준비한다.
농업 현장교수로 활동하며 후배 농업인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도 아낌없이 나눈다. 복숭아 체험농장을 지역과 연결한 활동을 이어온 은희 씨는 올해 한사랑농촌문화상 융복합 부문 수상자로도 선정되며 농촌 상생 활동을 인정받았다.
자신이 헤매 온 길을 누군가는 조금 덜 헤매길 바라는 은희 씨는 오늘도 배움을 나누며 농촌의 내일을 키워가고 있다. 농사를 다시 시작한 개인의 재기가 이제는 체험과 교육, 후배 농업인 지원으로 넓어지고 있다.
1부 줄거리


한여름 복숭아 수확 철, 복숭아밭에 세 모녀가 모였다. 농사일만으로도 바쁜데 농사 외에도 하는 일이 많은 은희 씨를 바라보는 순조 엄마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결국 두 사람은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고, 설상가상으로 함께 일하던 직원까지 다치는 사고가 터진다. 예상하지 못한 부상까지 겹치면서 복숭아밭은 더 분주해지고 모녀의 언성도 갈수록 높아진다.
수확철에 모인 세 모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밭을 지키고 있다. 농사와 체험, 판매까지 동시에 챙겨야 하는 은희 씨와 일을 놓지 못하는 순조 씨, 농사 2년 차 미래 씨가 복숭아를 무사히 수확할 수 있을까?
세 모녀의 신경전 뒤에는 결국 같은 복숭아밭을 지키려는 마음이 놓여 있다. 직원 부상이라는 돌발 상황까지 겹친 수확철을 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넘길까?
복숭아 수확철에 맞붙은 세 모녀의 신경전과 직원 부상 뒤의 수확 현장은 8월 31일 월요일 오전 7시 50분에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443회 ‘복사골 모녀 삼대’ 1부에서 공개된다.
사진 : K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