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에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 시즌3’에서는 퇴직 이후 직접 지은 집에서 사람을 맞고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며 나이 드는 시간이 즐거워졌다는 두 가족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90평 정원 집

경기도 용인특례시, 광교산과 낙생저수지를 품은 주택 단지 꼭대기에는 사계절 장미 넝쿨이 반기는 4층 집이 자리한다. 다양한 꽃과 나무가 빼곡한 90평 정원까지 더해져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규모와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약 3년 전 남편 화수 씨의 퇴직을 계기로 부부는 25년 전에 사둔 땅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평생 한 번 지을 집이라면 후회 없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그렇게 부부가 붙인 이름이 ‘멋대로 하우스’다.
처음부터 의견이 같았던 것은 아니다. 화수 씨는 관리가 쉽고 동선이 단순한 아담한 단층집을 원했지만, 아내 명심 씨는 높은 곳에서 주변 풍경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다층집을 바랐다. 명심 씨가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남편이 아내의 구상에 손을 들었다.
정원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명심 씨의 고집은 이어졌다. 진흙과 돌이 뒤섞였던 땅을 혼자 세 차례나 갈아엎고 마사토를 깔면서 90평 마당의 바탕부터 다시 만들었다. 주변에 자연이 충분하니 관리가 편하도록 시멘트를 깔자는 남편의 제안도 있었지만, 명심 씨는 꽃과 나무가 사계절 자리를 지키는 정원을 선택했다.
원래부터 조경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해외 생활 동안 손님을 초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했던 명심 씨는 한국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와 머물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정원을 가꾸는 일도 보기 좋은 마당을 갖기 위해서라기보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바람은 1층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넓은 다이닝 공간을 만들고 손님이 묵어갈 수 있는 평상까지 마련하면서 정원과 1층 전체가 자연스럽게 동네 사랑방이 됐다. 이웃들이 수시로 들러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공간이 되면서 부부가 원했던 ‘사람이 머무는 집’이 실제 생활 속에서 완성됐다.
건물이 둘로 갈라지는 듯 보이는 V자형 외관도 단순한 디자인 선택만은 아니었다. 착공을 앞두고 앞집 이웃이 새집 때문에 조망이 가려지고 사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다고 걱정하자 명심 씨는 건물 방향을 과감하게 틀었다.
예정에 없던 설계 변경이었지만 새로운 장점도 생겼다. 이웃의 시선을 배려하면서 동남향 햇살을 실내로 끌어들였고, 집 안 여러 위치에서 광교산과 낙생저수지를 비롯한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1층이 이웃과 손님에게 열린 공간이라면 2층부터는 부부의 생활이 중심이 된다. 2층에는 아늑한 거실과 주방을 두고 뒷산과 이어지는 테라스를 배치했으며, 3층에는 침실과 욕실을 올려 층마다 쓰임을 나눴다.
정원과 1층이 명심 씨의 취향을 가장 진하게 보여주는 장소라면 숲과 맞닿은 4층 다락은 화수 씨의 아지트다. 네 개 층을 오르내리는 구조라 노후의 이동 부담도 미리 계산했고, 지금은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을 훗날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자리로 남겨뒀다.
집을 짓는 동안에는 단층과 다층, 시멘트 마당과 정원처럼 부부의 생각이 번번이 엇갈렸다. 그러나 실제 생활을 시작한 뒤 화수 씨는 불편함보다 집이 주는 행복감이 훨씬 크다고 느끼게 됐다.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이 늘고 가족이 함께 머무는 공간이 생기면서 집은 나이가 들어가는 시간을 답답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더 많은 관계를 품는 장소가 됐다. 나눔의 기쁨과 가족의 행복이 함께 커지고 있다는 ‘멋대로 하우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퇴직 후 나에게로 출근하는 집

경기도 양평군 북한강을 따라 배산임수 터에 수평으로 길게 뻗은 또 다른 집이 있다. 거대한 옹벽 위에 자리한 이곳은 광고영상 업계에서 30년간 일한 호경 씨가 퇴직 이후 자신의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호경 씨가 처음부터 계획된 은퇴를 맞은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경영 악화로 사업을 정리하면서 오랫동안 뒤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됐고, 그 가운데 첫 번째로 선택한 것이 장모님의 원두막이 있던 터에 집을 짓는 일이었다.
빠듯한 예산은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계속 선택을 요구했다. 원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넣기 어려워 여러 차례 포기와 결정을 반복해야 했지만, 부부는 그 과정을 지나며 자신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갔다.
광고영상 일을 하던 시절 호경 씨는 수많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과 직원들이 좋아하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익숙했다. 반면 정작 자신이 어떤 공간을 좋아하고 어떤 재료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설계를 반복하면서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 나무와 돌처럼 자연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재료에 자신이 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부가 집을 지으며 뒤늦게 확인한 취향을 한마디로 정리한 말은 “우리는 예쁜 게 좋아!”였다.
집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북한강 조망을 살리는 일이었다. 강을 마주한 땅의 장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대지를 높였고, 긴 계단을 따라 집에 올라서면 강줄기가 넓게 펼쳐지도록 시야를 확보했다.
정원을 크게 만들고 관리하는 대신 실내 여러 지점에서 바깥 풍광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한옥을 닮은 단아한 외관과 거실의 큰 통창은 자연을 실내 풍경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내부 역시 화려한 장식을 더하기보다 콘크리트와 목재, 금속 같은 재료 자체의 질감을 드러내며 부부가 좋아하는 담백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연 재료에서 발견한 취향을 실내 곳곳에 그대로 남긴 셈이다.
천장에는 한옥의 서까래를 떠올리게 하는 선을 살리고, 그 흐름을 가리지 않도록 주방 수납장 높이를 낮췄다. 가전과 생활용품은 눈에 띄지 않게 정리해 공간이 복잡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주방 한가운데에는 외벽과 비슷한 질감을 가진 묵직한 콘크리트 아일랜드를 배치했다. 거실에서 처마까지 이어지는 중목 대들보는 실내와 외부를 시각적으로 연결하면서 집 안에 있어도 북한강과 주변 자연이 계속 시선에 들어오도록 했다.
생활이 시작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사람은 호경 씨였다. 일할 때는 휴대전화를 손에서 떼지 못할 정도로 늘 업무에 매달렸지만, 이제는 꼭두새벽부터 저녁까지 텃밭을 돌보고 집을 손보는 일에 시간을 쓴다.
예전에는 회사로 향하던 아침이 이제는 자신의 집과 밭으로 향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퇴직 직후에는 일이 사라지면 자신이 고립되거나 무력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컸지만, 매일 흙을 만지고 집을 가꾸면서 하루를 채우는 방법을 새롭게 찾았다.
그 과정에서 호경 씨는 재산을 더 쌓는 것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퇴직은 일을 모두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그동안 뒤로 미뤄뒀던 자신의 취향과 생활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아내 현주 씨는 남편을 두고 이 집을 가장 충만하게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아들 호재 씨는 아버지가 밭일에 중독됐다고 표현한다. 가족이 알아볼 정도로 활기를 되찾은 호경 씨에게 집은 퇴직 뒤 머무는 장소를 넘어 매일 자신에게로 출근하게 만드는 새로운 생활의 중심이 됐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용인의 집과 자신에게 다시 출근하게 만든 양평의 집은 모양도 생활 방식도 다르지만, 두 가족 모두 집을 지으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발견했다. 나이 들어갈수록 더 즐거워졌다는 두 집의 하루는 어떤 모습으로 완성됐을까?
90평 정원을 동네 사랑방으로 연 ‘멋대로 하우스’와 북한강을 바라보며 퇴직 후 하루의 활기를 되찾은 호경 씨 부부의 집은 9월 15일 화요일 오후 9시 55분에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 시즌3’에서 공개된다.
사진 :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