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장준하 의문사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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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24회에서는 장준하 선생의 석연치 않은 죽음과 그 뒤에 남겨진 의혹을 다룬 ‘1975, 그 해 여름 약사봉에서’ 편이 공개됐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 조명

SBS ‘꼬꼬무’는 단순 추락사로 알려졌던 우리나라 대표 지식인 장준하 선생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했다. 이날 방송에는 가수 티파니, 방송인 서경석, 배우 한그루가 리스너로 출연해 1975년 발생한 장준하 의문사를 중심으로 당시 사건 처리 과정과 이후 재조사에서 드러난 의혹들을 따라갔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운악산에서 등산 중이던 장준하 선생은 약 14m 절벽 아래 계곡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은 빠르게 실족으로 인한 추락사로 결론 났지만, 시신 상태는 일반적인 추락사와 달랐다. 옷과 신발, 안경은 온전했고 손에는 절벽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했을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 의문을 키웠다.

엇갈린 목격자 진술

사건을 둘러싼 의문은 목격자 진술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동행자는 장준하 선생이 먼저 절벽 쪽으로 향하다가 추락했다고 주장했지만, 진술은 시점마다 달라졌다. 구조 동선 역시 지형과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됐다.

여기에 ‘군인 2명’의 존재까지 언급됐지만 끝내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추락사로 마무리되는 과정도 석연치 않았다. 의문을 품고 취재하던 기자는 유언비어 유포죄로 구속됐고, 이후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사건은 서둘러 종결됐다. 2003년 의문사위 재조사 과정에서는 관련 기록 일부가 사라진 정황까지 드러나며 정보기관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37년 만에 드러난 타살 의혹

결정적인 전환점은 2012년이었다. 장준하 선생 사후 37년 만에 이장이 진행됐고, 관을 연 순간 현장은 충격에 빠졌다. 1975년 당시 확인되지 않았던 두개골 함몰 흔적과 골절이 새롭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떨어진 것은 맞지만, 머리를 먼저 맞고 누군가에 의해 던져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며 단순 사고가 아닌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시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맞서 ‘백만인 개헌 청원 운동’을 주도하며 정권과 대립하던 인물이었다. 유신헌법에 반발해 ‘거사’를 준비하던 중으로 알려진 상태에서 계획된 날짜를 불과 5일 앞두고 사망했다는 점은 의혹을 더욱 키웠다.

가족에게 이어진 고통

장준하 선생의 죽음 이후 가족 역시 큰 고통을 겪었다. 장남이 괴한의 습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에도 유족에게는 지속적인 감시와 위협이 이어졌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핵심 자료는 대부분 소실됐고, 유일한 목격자도 진술을 번복하다 사망했다. 결국 사건은 ‘진상 규명 불능’ 상태로 남았다. 한그루는 가족들 때문이라도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고 말했고, 티파니는 이대로 종결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광복군 장준하의 대장정

청년 장준하는 1944년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광복군이 되기 위해 일본군에 자원 입대한 뒤 탈출해 무려 2,356km를 걸어 임시정부로 향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 그의 신념에 서경석은 그 나이에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광복군이 된 장준하 선생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CIA의 전신인 미군 OSS에 들어가 한반도 침투 작전을 준비하며 목숨을 걸었다.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38년 만의 무죄

2013년에는 장준하 선생의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열렸다. 재판부는 인권의 암흑기에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38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출연진들은 그의 삶과 죽음을 되짚으며 석연치 않은 추락사가 그대로 묻힌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 3MC는 장준하 선생을 혼란한 시대에 부끄러움을 알았던 진짜 어른이자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자 했던 인물로 평가했다. 서경석은 이념을 떠나 진정한 옳음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긴 분이라고 했고, 한그루와 티파니 역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방송 후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진상 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에 대한 분노와 장준하 선생의 삶에 대한 존경이 이어졌다. 시청자들은 당시 현실에 대한 답답함, OSS 합류와 광복군 서사에 대한 놀라움, 이런 역사 이야기가 계속 다뤄져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당시 시대와 권력의 그림자를 다시 보게 하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두개골 함몰과 엇갈린 진술, 사라진 기록은 단순한 추락사라는 결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그의 삶을 함께 되짚은 이번 방송은 진실을 묻는 일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를 보여줬다.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다룬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24회는 5월 14일 목요일 오후 10시 20분 방송됐다.

출처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