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5일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425회 ‘우리 종부 한찬라이 3부’에서는 한국살이 17년 차 한찬라이 씨가 첫째 비현의 매니저와 의용소방대원으로 뛰고, 고조부 제사를 준비하는 바쁜 하루가 공개된다.
경상북도 문경시에는 똑순이 농부가 있다. 푸른 호박밭에서 트로트를 틀어놓고 호박순만 골라 따는 이는 캄보디아에서 온 한찬라이(43) 씨다.
밭으로 가는 길에는 남편 김상동(61) 씨가 수시로 벌초하며 돌보는 조상들의 묘가 길게 이어진다. 한찬라이 씨는 안동 김씨 종부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뒤돌아서면 다시 제사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집안 제사가 많았다. 집안에서는 맏며느리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제사를 줄이고 또 줄였지만, 현재도 한 해 여섯 번 제사상을 차린다.
제사상에 오르는 나물과 탕국, 문중 제사상에 꼭 필요한 조기구이까지 모두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종부의 음식과 손맛이 시어머니에게서 한찬라이 씨에게 이어진 셈이다.
이제 얼굴도 모르는 고조부의 제사가 다가온다. 농사와 집안일을 함께해야 하는 캄보디아 종부의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스물셋에 대만으로 떠난 한찬라이 씨는 공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부모의 집을 지어드리고 동생들의 공부를 뒷바라지했다. 가족의 맏이로 책임을 다한 뒤 한국으로 건너온 캄보디아 장녀는 종갓집 종손 김상동 씨를 만나 결혼했다.
굴착기 기사인 김상동 씨는 부엌일에는 모르쇠지만 집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아내를 위한 돌쇠가 된다. 노래를 잘 부르는 첫째 비현(14), 똑 부러지는 둘째 준수(12), 순한 막내 태현(11)까지 삼 남매를 바라보면 한찬라이 씨에게 다시 힘이 솟는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수록 캄보디아에 있는 친정 부모에 대한 그리움도 커졌다. 한찬라이 씨는 고향 음식을 떠올리며 동남아시아 채소를 심었고, 수확한 채소를 SNS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가지부터 오크라까지 너른 밭에 고향의 채소가 자라면서 문경 들녘에는 작은 캄보디아가 만들어졌다. 두 여동생도 한국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어 동생들에게 큰언니의 문경 집은 친정과 같은 공간이 됐다.
동생들이 찾아오는 주말 아침이면 첫째 비현은 집 안을 박박 청소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돕는다. 한찬라이 씨도 하던 일을 멈추고 버선발로 밖에 나가 반가운 가족을 맞는다.
한국살이 17년, 처음에는 낯선 한국에서 동동거렸지만 어느새 종부와 엄마로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한찬라이 씨의 삶은 여름 들녘처럼 눈부시게 푸르다.
캄보디아에서 온 종부, 한찬라이

푸른 호박밭을 헤치며 호박순만 똑똑 골라 따는 농부는 한찬라이 씨다. 시어른부터 남편까지 모두 농사를 반대했지만, 그는 6년 전부터 줄콩과 슬락바, 오크라, 하늘초 등 캄보디아에서 먹던 채소들을 길러 판매하고 있다.
밭에서 재배하는 동남아시아 채소는 15종류가 넘는다. 처음에는 고향 음식이 그리워 가족이 먹을 만큼 심었지만, SNS에 채소 사진을 올린 뒤 한국에 사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은 날에는 필요한 채소를 그날 수확한다. 품목과 수량을 확인해 상자에 포장한 뒤 신선한 상태로 받아볼 수 있도록 당일 택배로 보낸다.
채소밭 옆에는 고조부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의 산소가 줄지어 있다. K-장남 김상동 씨를 만나 결혼한 한찬라이 씨는 안동 김씨 계랑공파 28대손 종부가 됐다.
한때는 100세 시할머니와 시부모까지 4대가 한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한국말과 생활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대가족을 챙겨야 했으니 맏며느리의 삶이 쉬울 리 없었다.
몇 년 전 시부모가 병원과 가까운 시내로 분가하면서 살던 집을 한찬라이 씨 부부에게 물려줬다. 집뿐 아니라 한 해 여섯 번 치르는 제사도 맏며느리에게 이어졌다.
제사 때마다 나물과 탕국을 만들고 문중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조기를 굽는다. 한찬라이 씨는 시어머니의 어깨너머로 재료를 손질하는 방법과 음식의 간, 상차림의 순서를 하나씩 배웠다.
이제 얼굴도 모르는 고조부의 제사가 다가온다. 혼자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한찬라이 씨를 돕기 위해 시누이들이 달려온다.
캄보디아에서 온 종부가 음식의 순서와 준비할 일을 알려주면 시누이들은 나물과 탕국, 생선 손질을 나눠 맡는다. 처음에는 시어머니를 따라다니던 며느리가 이제는 가족을 지휘하며 제사상을 차리는 종부가 됐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가까이 부른다. 농사를 짓느라 검게 그을린 며느리의 손을 다독이며 고맙다고 말한다.
짧은 감사의 말에 한찬라이 씨는 왈칵 눈물을 쏟는다. 낯선 나라에서 한국말과 제사 음식의 이름부터 배워야 했던 세월, 농사와 육아를 병행하며 종부의 자리를 지킨 시간이 시아버지의 한마디에 겹쳐진다.
엄마는 손이 100개라도 부족해


한국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면 캄보디아에는 ‘엄마 손은 100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농사와 판매, 육아와 집안일, 마을 활동까지 맡은 한찬라이 씨의 하루를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고향 음식이 그리워 농사를 짓기 시작한 한찬라이 씨는 수확한 채소 사진을 SNS에 올렸다. 한국에 살면서 캄보디아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주문하기 시작했고, 현재 재배하는 채소는 15종류까지 늘었다.
매일 주문이 들어오면 그날 필요한 채소를 따고 곧바로 택배를 보낸다. 밭에서 돌아온 뒤에도 채소를 선별하고 수량을 맞춰 포장해야 하므로 농부의 일은 해가 진 뒤까지 이어진다.
바쁜 가운데 한국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웃의 시고모가 답답한 일을 당하면 한찬라이 씨가 내용을 확인하고 필요한 설명을 대신해준다.
캄보디아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삼 남매 비현과 준수, 태현이다. 지역 축제에서 인기상을 받을 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첫째 비현은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비현이 무대에 서는 날이면 한찬라이 씨는 농부에서 매니저로 변한다. 공연 일정과 이동 시간을 확인하고 의상을 챙기며 아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필요한 일을 살핀다.
공연 직전에는 비현의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긴장을 풀어준다. 무대가 끝난 뒤에는 잘한 부분을 칭찬하고 다음 공연에서 고쳐야 할 점도 함께 이야기한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공부도 걱정이다.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교로 달려가 담임교사를 만나 상담을 받는다.
첫째의 가수 활동을 지원하면서도 둘째 준수와 막내 태현의 생활을 놓치지 않는다. 세 아이의 식사와 빨래, 청소를 챙기고 각자의 학교생활과 고민을 살피며 시간을 나눈다.
가족을 돌본 뒤에는 여성의용소방대원으로 마을 어르신들을 만난다. 화재 예방과 생활안전 수칙을 설명하며 자신이 사는 마을의 안전도 챙긴다.
그러니 캄보디아 엄마에게는 손이 100개라도 한참 부족하다. 그래도 순하게 자라는 삼 남매와 국밥처럼 진국인 남편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굴착기 기사인 남편 김상동 씨는 부엌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대신 묘 주변의 풀을 베고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등 집 밖의 일에서는 아내를 위한 돌쇠로 움직인다.
캄보디아 동생들의 친정이 된 큰 언니


시어른들이 삼 남매를 예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한찬라이 씨는 캄보디아에 있는 부모를 떠올린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멀리 떨어진 친정 부모에 대한 그리움도 깊어진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한찬라이 씨는 고생하는 부모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스물셋에 대만으로 떠나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대만에서 번 돈으로 부모가 생활할 집을 지어드리고 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를 보탰다. 부모와 동생들을 생각하며 일하다 보니 6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그 무렵 한국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던 둘째 여동생을 통해 한국과 인연이 닿았다. 한찬라이 씨는 종갓집 종손 김상동 씨를 만나 결혼했고, 캄보디아 아가씨에서 문경댁이 됐다.
나중에는 한국에 일하러 온 막내 여동생도 한국 사람과 결혼했다. 부모가 있는 캄보디아와 멀리 떨어져 사는 두 여동생에게 문경의 큰언니 집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친정이 됐다.
여름 밭에는 캄보디아에서 먹던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구미에 사는 동생들이 조카들과 함께 놀러 오기 좋은 계절이다.
동생들이 온다는 소식에 첫째 비현은 주말 아침부터 집 안을 청소한다. 한찬라이 씨는 가족이 도착하자 버선발로 밖으로 달려 나가 반갑게 맞이한다.
세 자매는 큰언니가 만든 작은 캄보디아 밭을 함께 걷는다. 줄콩과 오크라, 캄보디아 가지를 살피며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과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자매가 함께 있으면 캄보디아에 계신 어머니와 고향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각자의 가정을 꾸렸지만 고향말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만큼은 어린 시절의 세 자매로 돌아간다.
한국살이 17년, 한찬라이 씨는 어느새 종부와 엄마로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가족과 동생들이 돌아오는 문경의 집도 그가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고향이 됐다.
한찬라이 씨의 삶은 고향의 채소가 가득 자라는 여름 들녘처럼 눈부시게 푸르다.
3부 줄거리


한국살이 17년 차, 캄보디아에서 온 한찬라이 씨는 가수를 꿈꾸는 첫째 비현을 위해 매니저가 된다. 공연 일정과 의상을 챙기고 아들이 무대에서 마음껏 노래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킨다.
가족의 일을 마친 뒤에는 마을의 안전을 위해 여성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한다. 어르신들에게 화재 예방과 생활안전 수칙을 알리며 주민들에게 필요한 일을 돕는다.
종부로 살아온 세월도 17년이다. 한찬라이 씨는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물김치와 식혜를 능숙하게 만들어낸다.
물김치는 제사 때 알맞게 익도록 미리 담가야 한다. 식혜도 엿기름물을 만들고 밥알이 떠오르는 시간을 살피며 정성을 들여야 한다.
다가오는 고조부 제사를 위해 나물과 탕국, 생선 등 준비해야 할 음식도 많다. 농사와 육아, 마을 활동을 마친 뒤 다시 부엌에 선 종부의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인다.
혼자 제사를 준비해야 하는 한찬라이 씨를 돕기 위해 지원군이 찾아온다. 시누이들이 재료 손질과 음식 준비를 나눠 맡으면서 혼자 감당해야 했던 제사 준비가 가족이 함께하는 일로 바뀐다.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종부의 손맛을 이어가고 첫째 비현의 꿈과 마을의 안전까지 챙기는 한찬라이 씨에게 하루는 언제나 짧다. 고조부 제사를 앞두고 찾아온 가족들의 도움이 그의 바쁜 손과 무거운 마음을 얼마나 덜어줄까?
한찬라이 씨가 비현의 매니저와 의용소방대원, 안동 김씨 종부로 분주한 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은 8월 5일 수요일 오전 7시 50분 KBS1 ‘인간극장’ 6425회 ‘우리 종부 한찬라이 3부’에서 공개된다.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