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424회 ‘우리 종부 한찬라이’ 2부에서는 한국살이 17년 차 종부 한찬라이 씨의 일상이 이어진다. 외지에서 일하는 남편 김상동 씨가 모처럼 집에 머물며 아내를 돕고, 가수를 꿈꾸는 첫째 비현이는 행사 무대를 앞두고 리허설에 나선다.
경상북도 문경시에는 똑순이 농부가 있다. 푸른 호박밭에서 트로트를 틀어놓고 호박순만 골라 따는 이는 캄보디아에서 온 한찬라이(43) 씨다.
밭으로 가는 길에는 남편 김상동(61) 씨가 수시로 벌초하며 돌보는 조상님들의 묘가 이어져 있다. 한찬라이 씨는 안동 김씨 종부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돌아서면 다시 제사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제사가 많았다. 맏며느리가 고생한다며 횟수를 줄이고 줄여 이제는 1년에 여섯 번 제사를 지낸다.
제사상에 오르는 나물과 탕국, 문중 제사상에 꼭 오르는 조기구이까지 척척 준비한다. 종부에서 종부로 이어진 음식과 제사 준비는 모두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이제 곧 얼굴도 모르는 고조부의 제사가 다가온다. 캄보디아에서 온 종부 한찬라이 씨의 손길은 다시 바빠진다.
한찬라이 씨는 스물셋에 대만으로 건너갔다. 공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부모님의 집을 지어드리고 동생들의 공부를 가르쳤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살아온 캄보디아 장녀는 이후 한국으로 왔고, 종갓집 종손 김상동 씨를 만나 결혼했다.
굴착기 기사인 남편 상동 씨는 부엌일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집 밖의 일이 생기면 아내를 위한 돌쇠가 된다.
노래를 잘 부르는 첫째 비현(14), 똑 부러지는 둘째 준수(12), 순둥순둥한 막내 태현(11)까지 삼 남매는 엄마 한찬라이 씨에게 힘을 주는 존재다.
삼 남매가 자라는 모습을 볼수록 캄보디아의 친정 부모님은 더욱 그리워진다. 한찬라이 씨는 동남아시아 채소를 심어 SNS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가지부터 오크라까지 너른 밭 가득 고향의 채소를 심으며 문경에 작은 캄보디아를 만들었다.
두 여동생도 한국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다. 한국에 사는 동생들에게 큰언니의 집은 친정이 됐다.
주말 아침이면 첫째 비현이가 집 안 청소를 돕고, 한찬라이 씨는 가족을 맞기 위해 버선발로 달려나간다.
한국살이 17년. 처음에는 낯선 한국에서 동동거렸지만 어느새 종부로, 엄마로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한찬라이 씨의 삶은 여름 들녘처럼 눈부시게 푸르다.
캄보디아에서 온 종부, 한찬라이



푸른 호박밭을 헤치며 호박순만 똑똑 골라 따는 농부가 있다. 시어른부터 남편까지 농사를 모두 반대했지만 한찬라이 씨는 6년 전부터 줄콩, 슬락바, 오크라, 하늘초 등 고향 캄보디아에서 먹던 채소를 길러 판매하고 있다.
현재 한찬라이 씨가 재배하는 동남아시아 채소는 15가지가 넘는다. 채소밭 옆에는 고조부부터 집안 어른들의 산소가 이어져 있다.
한찬라이 씨는 K-장남 김상동 씨를 만나 결혼했고, 안동 김씨 계랑공파 28대손 종부가 됐다.
한때는 100세 시할머니와 시부모님까지 4대가 한집에서 살았다. 낯선 한국으로 시집온 맏며느리에게 쉬운 생활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시부모님은 병원과 가까운 시내로 분가하면서 집을 물려줬다. 한찬라이 씨는 집과 함께 1년에 여섯 번의 제사도 물려받았다.
곧 얼굴도 모르는 고조부 제사가 다가온다. 시누이들이 달려와 준비를 돕고, 캄보디아 종부 한찬라이 씨의 지휘 아래 제사상이 차려진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가까이 부른다. 농사를 짓느라 검게 그을린 며느리의 손을 다독이며 고맙다고 말한다.
시아버지의 따뜻한 말에 한찬라이 씨는 왈칵 눈물을 쏟는다.
엄마는 손이 100개라도 부족해



한국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면 캄보디아에는 ‘엄마 손은 100개도 부족해’라는 말이 있다.
한찬라이 씨는 고향 음식이 그리워 농사를 시작했다. 직접 기른 채소 사진을 SNS에 올리자 한국에 사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이 늘면서 재배하는 채소의 종류도 많아졌다. 지금은 15가지가 넘는 동남아시아 채소를 기르고 있다.
매일 주문을 받으면 그날 채소를 따고, 그날 바로 택배를 보낸다. 신선한 채소를 보내기 위해 밭과 포장 작업장을 쉴 새 없이 오간다.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이제는 이웃에 사는 글을 모르는 시고모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캄보디아 엄마 한찬라이 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삼 남매 비현, 준수, 태현이다.
지역축제에서 인기상을 탈 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첫째 비현이의 매니저로 나서고,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공부가 걱정되면 학교로 달려가 담임선생님과 상담한다.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하며 마을 어르신들에게 안전교육도 해야 한다. 농사와 택배, 집안일과 육아, 지역 활동까지 이어지는 하루에 손이 100개라도 부족하다.
그래도 순하게 잘 자라는 삼 남매와 국밥처럼 진국인 남편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캄보디아 동생들의 친정이 된 큰 언니


삼 남매를 예뻐하는 시어른들을 볼 때마다 한찬라이 씨는 캄보디아에 계신 부모님이 그립다.
한찬라이 씨는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났다. 고생하는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어 스물셋에 대만으로 떠났다.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 부모님의 집을 지어드리고 동생들의 공부를 도왔다.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하며 일하다 보니 6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그 무렵 둘째 동생은 한국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었다. 동생을 통해 한국과 인연이 닿았고, 한찬라이 씨는 종손 김상동 씨를 만나 ‘문경댁’이 됐다.
나중에는 한국에 일하러 온 막내 여동생까지 결혼했다. 문경에 있는 큰언니의 집은 두 동생이 한국에서 찾아갈 수 있는 친정이 됐다.
여름 밭에는 고향의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구미에 사는 동생들이 조카들과 함께 놀러 오기 좋은 계절이다.
세 자매는 큰언니가 만든 작은 캄보디아 밭에서 그리운 엄마와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국살이 17년. 한찬라이 씨는 어느새 종부로, 엄마로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그의 삶은 여름 들녘처럼 눈부시게 푸르다.
2부 줄거리
캄보디아에서 온 한찬라이 씨는 한국살이 17년 차 종부다.
외지에서 일하는 남편 상동 씨가 모처럼 집에 머물며 아내를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시고모와 먼 친척도 수시로 밭을 돌보며 한찬라이 씨의 지원군이 되어준다.
한편 가수를 꿈꾸는 첫째 비현이가 행사 무대에 서게 된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마친 비현이의 표정은 좋지 않다.
모처럼 집에 온 남편 상동 씨는 아내를 위해 어떤 일을 해낼까? 가수를 꿈꾸는 비현이의 표정이 리허설 뒤 어두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김상동 씨와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 첫째 비현이의 행사 무대 이야기는 8월 4일 화요일 오전 7시 50분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424회 ‘우리 종부 한찬라이’ 2부에서 공개된다.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