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국가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국가

11월 2일에 방송되는 EBS1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국가’ 편은 EBS(사장 김유열)가 인문교양 대기획의 신작으로 선보이는 플라톤의 ‘국가’(Politeia, 기원전 375년경)를 다룬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나는 정의로울 것인가”. 2,400년 전 아테네의 한 집에서 밤새 오간 이 물음은, 들키지 않는 이익과 넘치는 자유가 함께 흔들리는 오늘의 사회에 그대로 되돌아온다.

인류 최고의 고전, 하룻밤의 대화

이번 편은 시리즈의 형식을 한 번 바꾼다. 지금까지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은 저자가 직접 말하는 1인칭 강의였지만, 《국가》는 애초에 대화편으로 쓰인 책이다.

그래서 열 편 모두 AI가 재현한 소크라테스와 트라쉬마코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서로 묻고 되받는 토론으로 진행된다. 플라톤은 그 방 안에 없다. 매 회차 앞머리에 두루마리가 놓인 빈 방에서 짧게 나타나 오늘 들을 대목을 일러주고 물러날 뿐이다.

무대는 기원전 5세기 말,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 축제 다음 날 저녁부터 다음 날 해질녘까지, 열 편이 끊기지 않는 하룻밤과 하루로 이어진다.

1강에서 낮게 타들어가던 등불은 5강에서 모두 꺼지고, 6강에서 소크라테스가 태양의 비유를 말하는 동안 실제로 해가 떠오른다.

7강과 8강은 아침빛 속에서, 9강은 한낮에, 10강은 다시 1강과 같은 저녁빛으로 돌아와 끝난다. 밖이 가장 밝아질 때 이야기는 동굴로 들어가고, 나라는 가장 깊이 무너진다. 등불의 높이와 창밖의 빛만 따라가도 열 편이 한 호흡이라는 것이 보인다.

정의는 남 좋은 일인가

1강은 소피스트 트라쉬마코스의 난입으로 시작한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이며, 양치기가 양을 살찌우는 것은 결국 제 몫을 챙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 말을 흔들어놓자, 2강에서는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이 같은 주장을 더 단단하게 다시 세운다.

글라우콘이 꺼내는 것이 귀게스의 반지다. 리디아의 한 양치기가 갈라진 땅속에서 주워 온 금반지. 알을 손바닥 쪽으로 돌리면 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반지가 둘 있어서 정의로운 사람과 부정의한 사람이 하나씩 낀다면, 끝까지 남의 것에 손대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글라우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의로운 사람에게서 평판까지 벗겨낸다. 평생 정의롭게 살면서도 가장 부정의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과, 부정의하면서도 더없이 훌륭하다고 칭송받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행복한가. 보상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말고 답해 달라는 것이 조건이었다.

이 반지는 직전 편과 곧바로 이어진다. 10월에 방송된 《의무론》 9강에서 키케로가 ‘무엇이 옳은가’와 ‘무엇이 이로운가’를 가르는 시험대로 꺼내 들었던 바로 그 반지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300년 앞선 플라톤에게서 그것을 빌려 왔다.

두 편을 나란히 보면, 같은 물음을 두고 그리스와 로마가 각각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가 드러난다. 키케로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답했다면, 플라톤은 하룻밤의 토론으로 답한다.

나라에서 찾아, 사람 안으로

소크라테스는 곧바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 안에서 찾기 어려운 정의를 더 큰 것에서 찾아보자며 말로 나라를 세운다. 농부와 목수와 직공이 빵과 올리브를 먹고 사는 작은 나라에 글라우콘이 불만을 터뜨리자 나라는 부풀어오르고, 땅이 모자라자 이웃의 경계를 넘는다. 전쟁은 그렇게 생겨난다.

다 지어진 나라에서 지혜와 용기와 절제를 하나씩 찾아낸 끝에 남은 것이 정의였다. 저마다 제 일을 하고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것. 소크라테스는 이 답을 들고 사람 안으로 들어간다.

목이 마른데도 잔을 물리는 사람이 있다면 영혼 안에는 시키는 쪽과 말리는 쪽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헤아림과 욕구, 그리고 둘이 갈릴 때 헤아림 편에 서는 기개. 나라의 세 부류가 그대로 한 사람의 영혼에 겹쳐지면서, 정의로운 나라와 정의로운 사람은 같은 질서의 두 얼굴이 된다.

그 질서를 지킬 사람은 누구인가. 5강에서 소크라테스는 비웃음을 각오하고 세 번째 파도를 꺼낸다.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참되게 철학을 하지 않는 한 나라에 재앙이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철학자는 새로운 것을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한 구경거리가 진리인 사람이다.

동굴에서 나온 사람은 왜 다시 내려가야 하는가

7강의 동굴은 《국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장면이다. 어릴 때부터 다리와 목이 묶여 벽만 바라보는 사람들, 등 뒤에서 타는 불, 담 위로 지나가는 물건들, 그리고 벽에 비친 그림자. 그들에게는 그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다. 우리를 닮았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묶인 사람 하나가 풀려나 거친 오르막을 끌려 올라가 마침내 태양을 본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다시 내려가야 한다.

눈이 어둠에 익기 전에 그림자를 두고 겨루면 웃음거리가 되고, 자기들을 풀어주려는 자를 붙잡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의 손에 사형당하는 것을 지켜본 제자가 쓴 문장이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내려가야 한다고. 교육이란 빈 영혼에 앎을 넣어주는 일이 아니라 몸을 통째로 돌리듯 영혼을 돌려세우는 일이며, 돌아선 사람에게는 돌아갈 의무가 남는다.

가장 높은 자유에서 가장 사나운 예속이 나온다

8강과 9강에서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세운 나라를 스스로 허문다. 나라는 참나무나 바위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에서 나오므로, 무너짐도 사람 안에서 시작된다.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왕좌에 오르고, 다음에는 돈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바뀜은 언제나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9강의 민주정은 온갖 빛깔로 수놓은 옷에 비유된다.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나라다. 그러나 자유를 잣대로 삼은 나라는 그 자유를 지나치게 탐하다 무너진다.

아버지가 아들을 두려워하고 선생이 학생의 비위를 맞추는 데까지 간 자유의 끝에서, 백성은 한 사람을 제 보호자로 앞세운다. 그가 같은 시민의 피를 맛보는 순간 사람은 늑대가 된다. 호위병을 달라는 그 유명한 청이 거기서 나온다.

10강에서 소크라테스는 2강의 조건을 끝까지 지킨 뒤에야 접어두었던 보상을 돌려달라고 한다. 영리하지만 못된 자는 출발선에서만 빠른 경주자와 같고, 끝까지 달린 자가 관을 쓴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죽었다가 열이틀 만에 되살아난 병사 에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저세상에서 그가 본 것은 영혼들이 제 다음 삶을 고르는 자리였다. 탓은 고르는 자에게 있고 신에게는 탓이 없다.

맨 마지막 제비를 뽑은 오뒷세우스의 영혼은, 다른 영혼들이 거들떠보지 않아 한구석에 남아 있던 평범한 시민의 삶을 기꺼이 집어 든다.

에르의 이야기에서 영혼들은 다음 삶을 스스로 고르고 그 선택의 책임도 자신에게 돌아간다. 귀게스의 반지로 시작한 정의의 물음에 마지막 강의는 어떤 답을 남길까?

EBS1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국가’ 10강은 11월 2일(월)부터 13일(금)까지 평일 밤 12시 5분에 EBS 1TV에서 방송되며, E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사진 :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