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에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은퇴 이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계와 생활을 다시 정리한 두 부부의 집을 찾아간다. 전북 군산에서는 이혼 뒤에도 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본채와 별채에서 살아가는 김주영 씨와 이윤미 씨를 만나고, 충남 보령에서는 지중해식 2층 집과 한옥을 두고 취향이 엇갈렸던 안영규 씨와 김선경 씨의 집을 들여다본다.
도장 찍고도 본채, 별채살이

전북 군산, 부부유별한 집을 찾아간다. 이혼 도장을 찍고서도 한 마당에 같이 사는 김주영 씨와 이윤미 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기 전 비혼주의였을 정도로 결혼에 큰 뜻이 없었지만 영화 동아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주영 씨는 윤미 씨의 용기와 대범함에 끌렸고, 윤미 씨는 주영 씨의 넓은 마음을 좋아했다. 서로 다름에 끌려 결혼까지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차이가 관계를 흔드는 이유가 됐고, 결국 부부의 연을 정리하게 됐다.
두 사람이 이혼했다고 해서 삶의 터전까지 완전히 갈라진 것은 아니다. 같은 마당 안에서 주영 씨는 본채에, 윤미 씨는 별채에 머문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지는 않지만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결혼과 이혼, 별거의 흔적이 한 공간 안에 겹쳐 있는 만큼 이 집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영 씨의 살림집인 본채에는 윤미 씨와 함께했던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관문에는 둘의 결혼사진이 붙어 있고, 윤미 씨가 직접 골랐던 화려한 조명도 그대로다. 두 사람은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함께 보낸 아름다운 시간까지 지우지는 않기로 했다. 처음에는 천장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낡았던 본채를 손보면서도 서까래를 절반가량 살려 옛 구조와 현대적인 공간이 함께 보이도록 고쳤다.
주영 씨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마당과 별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큰 통창 앞이다.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별채로 향하기도 한다. 이혼 뒤 같은 공간에서 계속 마주치면서도 이전처럼 모든 생활을 공유하지 않는 두 사람의 현재가 이 창을 사이에 두고 드러난다.
윤미 씨가 생활하는 별채는 규모는 작지만 그의 취향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명상과 요가를 즐기는 윤미 씨에게 별채는 스스로를 돌보고 혼자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 곳곳에 식물을 두었고, 곡선 형태를 지닌 서까래도 억지로 반듯하게 손보지 않았다. 침실 너머 작은 툇마루에서는 바깥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자신에게 필요한 속도로 하루를 보낸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은 넓은 본채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봤다. 그러나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다름을 조금씩 인정하게 됐고, 윤미 씨가 빈 별채로 옮겨가면서 생활 공간도 갈라졌다. 주영 씨는 그때 이별을 직감했다. 채를 나눠 지냈어도 서류상 부부라는 관계는 윤미 씨에게 계속 ‘아내’라는 무게로 남았고, 결국 이혼 도장을 찍고 나서야 그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같은 마당 안에서 각자의 삶을 지킨다. 본채에는 함께했던 추억이 남아 있고 별채에는 윤미 씨가 새롭게 정리한 일상이 있다. 앞으로도 두 사람이 계속 한 마당 안에서 살아갈지, 언젠가 누군가 떠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이 집은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지 않으면서도 서로 다른 공간을 통해 각자의 삶을 되찾는 방법을 두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같은 마당을 공유하면서도 생활 공간과 시선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점도 두 사람의 현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혼 뒤에도 관계를 끊어내는 대신 생활의 경계를 다시 정하고, 한때 부부였던 두 사람이 각자의 일상을 유지하는 방식이 집의 구조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본채의 통창에서는 별채가 보이지만 윤미 씨의 툇마루는 바깥 풍경을 향해 있다. 함께 살던 시절의 흔적을 본채에 남겨둔 주영 씨와 자기 취향으로 별채를 채운 윤미 씨가 같은 집터에서 서로 다른 일상을 꾸리면서, 과거를 없애기보다 필요한 거리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다시 정리한 것이다.
맞는 게 하나 없는 동상이몽 집

충남 보령에서는 취향부터 집에 대한 꿈까지 맞는 것이 거의 없었던 안영규 씨와 김선경 씨를 만난다. 낚시를 좋아했던 영규 씨는 어느 날 선경 씨에게 땅을 사자고 제안했고, 자신이 오래 꿈꿔온 지중해식 2층 집을 지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설계까지 마친 뒤 확인한 땅에는 선경 씨가 마음에 들어 한 오래된 한옥이 있었다. 새것을 좋아하는 영규 씨와 앤티크 가구를 모을 정도로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선경 씨의 취향이 집에서부터 정면으로 부딪혔다.
결국 영규 씨는 아내의 뜻을 따라 새집을 짓는 대신 오래된 한옥을 고치기 시작했다. 공사 과정이 궁금했던 선경 씨는 CCTV로 영규 씨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남편은 아내가 원했던 집을 만들기 위해 손을 보탰지만, 막상 완성된 집을 본 선경 씨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가장 큰 문제는 부엌이었다.
살림을 많이 해보지 않은 영규 씨가 공사를 맡다 보니 부엌이 예상보다 작아졌다. 아내를 위해 고친 공간이 정작 아내에게 불편한 부엌이 된 셈이다. 그 결과 영규 씨는 이전보다 부엌일을 더 많이 맡게 됐다. 하지만 작은 부엌 곳곳에는 선경 씨의 취향이 살아 있다. 서까래 천장 아래 펜던트 조명이 달려 있고, 오래된 장 위에는 여러 나라에서 모은 찻잔이 놓여 있다. 집의 구조는 남편의 손으로 고쳤지만 공간의 분위기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고풍스러운 물건들이 자리한다.
부엌을 지나면 부부의 침실이 나온다. 두 사람은 원래 시어머니가 물려준 오래된 침대를 함께 썼지만 어느 날 선경 씨가 침대를 따로 두고 자자고 제안했다. 영규 씨는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아내의 말을 따랐고, 지금은 각자 침대를 쓰는 생활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잠자리는 나뉘었어도 평소에는 늘 함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에게 각자의 침대는 관계가 멀어진 표시가 아니라 서로 편안하게 지내기 위한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침실의 미닫이문을 열면 부부가 함께 머무는 거실과 대청마루가 이어진다. 난방 배관을 설치하려면 오래된 대청마루를 뜯어야 했기에 영규 씨는 마루 하나하나에 숫자를 적어 해체한 뒤 다시 같은 자리에 맞춰 조립했다. 덕분에 한옥의 모습을 살리면서도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거실이 완성됐다. 논산까지 가서 짜온 홍송 목창호도 더해지면서 집 곳곳에는 영규 씨가 들인 시간과 손길이 남았다.
영규 씨에게 이 집은 은퇴 이후의 삶을 다시 시작한 장소이기도 하다. 잘 나가던 식당을 20년 넘게 운영했지만 어느 순간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일에 치여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부부는 살기 위해 보령으로 왔다. 바쁜 생활에서 벗어난 뒤 영규 씨가 다시 꺼내든 것은 오래전 접어두었던 음악에 대한 꿈이었다.
학창시절 가수 전영록과 함께 지냈고 듀엣으로 데뷔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던 영규 씨는 부모님의 반대로 가수의 꿈을 접었다. 이제는 마당 한구석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마음껏 노래한다. 선경 씨도 남편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황토방에서 옷을 만들며 좋아하는 일을 이어간다. 서로 원하는 집도, 잠자는 방식도, 좋아하는 물건도 달랐지만 은퇴 뒤에는 오히려 그 차이를 위한 공간을 각각 마련하면서 한 집에서 함께 지내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집을 고치는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차이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차이가 각자의 생활 공간을 만드는 기준이 됐다. 선경 씨가 좋아하는 오래된 물건과 한옥의 서까래는 남고, 영규 씨가 직접 손본 난방과 목창호가 생활의 편의를 더했다. 각자의 침대를 쓰는 침실과 함께 머무는 거실, 영규 씨의 음악 아지트와 선경 씨의 황토방이 한 집 안에 공존하면서 서로 다른 취향을 억지로 하나로 맞추지 않는 생활 방식이 만들어졌다.
군산의 김주영 씨와 이윤미 씨는 이혼 뒤 본채와 별채로 거리를 만들었고, 보령의 안영규 씨와 김선경 씨는 같은 집 안에서 서로 다른 취향과 생활 방식을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집이 관계를 정답 하나로 묶기보다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를 만들어주는 공간이 될 때, 은퇴 후 부부의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혼 뒤에도 같은 마당을 공유하는 전 부부와 서로 다른 취향을 한옥 안에 담아낸 부부의 이야기는 10월 6일 화요일 오후 9시 55분에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 ‘은퇴 그 후, 부부의 세계’ 편에서 공개된다.
사진 :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