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재난과 참사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재난은 그렇게 발생하고, 수습되고, 어느 순간 뉴스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생존자와 유가족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재난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시사기획 창]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날을 경험한 부모의 트라우마는 자녀 세대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우리는 대물림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오래전 국가 폭력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참사부터 최근 사건의 생존자와 유가족, 그들의 2세대, 그리고 국내외 정신건강의학, 신경과학, 경제학, 유전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를 만나 트라우마 대물림의 단서를 확인했다.
10월 27일에 방송되는 KBS1 ‘시사기획 창’ 568회에서는 국내 정신건강의학 교수들과 합동 연구팀을 꾸려 우리나라 최초로 재난 경험자 부모들의 자녀 ‘뇌’를 분석한다. 부모의 트라우마가 자녀의 몸에 어떤 형태로 각인되는지 살펴보며 ‘재난 상속’의 실태를 추적한다.
아빠의 트라우마를 짊어진 두 딸
세월호에서 학생들을 살리고 돌아온 아빠는 예전과 달랐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스스로 학대하는 길을 선택했다. 아내와 두 딸의 일상도 아빠의 상태를 살피고 곁을 지키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두 딸은 아빠의 뒤를 이어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택했다.
그러나 두 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우리는 암 투병 중인 첫째 딸을 만났다. 12년 동안 두 딸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웃는 척해도 딸은 느낀다 : 조용한 전이
그날 이후 어린 딸이 갑자기 커버렸다. 아빠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초등학생 딸은 지금도 오송 지하차도에서 살아 돌아온 아빠를 위해 편지를 쓴다. 악몽도 꾸고, 혼자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생존자 아빠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아빠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딸은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차곡차곡 모아둔 딸의 편지를 들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찾았다.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
뱃속에서 겪은 대지진, 트라우마로 오다
부모가 겪은 참사의 영향은 어디까지 미칠까. 취재진은 단서를 찾기 위해 일본 도호쿠 지역으로 향했다. 2011년 대지진으로 가장 피해가 컸던 곳이다. 우리는 쓰나미로 일본인 남편을 잃은 한국인 여성과 당시 뱃속에 있던 막내딸을 만났다.
일본에서는 이 막내딸처럼 대지진 직후 1년 동안 태어난 자녀들 219명을 10여 년 장기 추적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추적 결과, 재난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녀들에게서도 재난의 흔적들이 발견됐다.
최초의 시도…우리도 들여다봤다
[시사기획창]은 우리나라 최초로 연구진과 함께 삼풍백화점 붕괴·세월호 참사 유가족, 그리고 참혹한 사고 현장을 늘 마주하는 소방대원의 자녀 뇌를 MRI로 비교 분석했다.
그런데, 자녀 뇌 2개 부위에서 유독 높은 활성도가 확인됐다. 자녀들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부모가 트라우마 고위험군인 가족 안에서 트라우마가 전이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침묵과 회피,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족에게서 트라우마 대물림의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레이첼 예후다 박사는 이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또 국가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생존자와 유가족 자녀들까지 지원하는 제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지원은 피해자 본인에서 멈춘다. 이유는 있었다. 우리가 침묵하고 회피하는 사이 국가 폭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참사, 제주 4.3 사건의 2세대는 지금 3세대를 걱정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 2세대의 걱정은 지원이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는지 묻게 한다.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의 자녀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의 자녀에게 남은 트라우마와 피해자 지원의 빈틈은 10월 27일 화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되는 KBS1 ‘시사기획 창’ 568회 ‘재난 상속’ 편에서 공개된다.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