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e] 고대 이집트인의 DNA, 세계 최초로 해독 성공](https://newsmeter.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153946-aa3ddbbb-700x392.jpg)
“이집트가 깨어나다” 12월 29일(월)
- 고대 이집트인의 DNA, 세계 최초로 해독 성공
“더 많은 고대 DNA가 이집트의 다층적인 역사와 인종 간의 혼합을 밝혀낼 것입니다”
-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 등 공동 연구진-
사막의 왕국 이집트, DNA로 문명사를 다시 쓰다? 피라미드와 미라, 신과 왕의 나라. 나일강 유역에서 형성된 이 문명은 피라미드와 문자, 정교한 행정 체계를 남기며 ‘완성도 높은 고대 문명’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집트 문명의 형성과 교류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됐다. 이집트는 외부의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문명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초기부터 주변 문명과 연결돼 있었을까?
최근 이 논쟁에 중요한 단서를 제시하는 과학적 성과가 나왔다. 국제 연구팀은 약 4500년 전에 살던 고대 이집트인의 전체 유전체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고대 이집트 유전체를 완전 해독한 역사적 성과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 고대 이집트인의 DNA 가운데 약 20%는 뜻밖에도 메소포타미아계로 확인되었다. 이는 두 문명의 교류에 대한 오래된 가설이 처음으로 확인된 생물학적 증거라고 하는데… 새롭게 밝혀진 고대 이집트인의 유전자에 대해서 알아본다.
“정상적인 계절은 없다” 12월 30일(화)
- 반복되는 돌발적인 기상, 우리가 알던 계절은 사라지고 있다?
올 한 해, 날씨는 유난히 종잡을 수 없었다. 봄이던 3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때아닌’ 대설특보가 내려졌고, 9월에는 가뭄과 폭우가 동시에 나타났다. 우리가 기억해 온 계절의 흐름과는 다른 장면들이 한 해 내내 반복된 상황. 왜 이런 ‘돌발적인 기상 변화’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일까?
2025년 3월, 봄에 내리는 눈은 대개 진눈깨비 정도로 여겨지지만,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는 대설특보가 내려졌다. 기상청은 “북극에서 떨어져 나온 영하 40도의 찬 공기 덩어리가 급격히 유입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서 9월, 강릉은 돌발 가뭄으로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평년의 6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같은 시기,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에는 시간당 150mm 안팎의 폭우가 쏟아졌다. 한 계절 안에서 전혀 다른 날씨가 겹쳐 나타난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2025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 피해 지역에, 단기간에 ‘9개월 치 비’가 쏟아지며 대홍수가 발생했고, 11월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나흘간 이어진 폭우로 인명 피해가 이어졌다.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 지역에서는 하루 전까지 영상 20도를 넘던 도시가 하룻밤 사이 영하로 떨어지며 가을 폭설이 내렸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로 북극과 중위도 사이의 온도 차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가 불안정해졌고, 그 결과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한 지역에 오래 머무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잦아졌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극단적인 날씨가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 세계적인 기상 변화는 한반도의 계절도 바꾸고 있다는데… 최근 11년간 기후 변화로 인한 인명 피해는 341명, 경제적 피해는 15조 원을 넘어섰다. 전 세계가 ‘돌발적인 기상 변화의 고리’ 위에 놓여 있는 지금, <지식채널e>는 우리가 맞닥뜨린 계절의 변화와 그 구조를 짚어본다.
![[251227] 지식채널e 스틸모음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시나요)](https://newsmeter.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153946-aa3ddbbb.jpg)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시나요?” 12월 31일(수)
- 이웃포비아의 시대, 이웃사촌은 정말 사라졌을까?
매일 같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같은 복도를 오고 가는 사람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채 가장 가까운 곳에 숨 쉬고 있지만, 현대인에게 이웃은 더 이상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찰나의 마주침조차 불편해 눈을 피하고, 닫히는 문소리에 안도하는 일상. 언제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투명한 타인이 되어버린 걸까?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이웃과의 접촉을 공포로 느끼는 ‘이웃포비아’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끝없는 층간소음 갈등과 쏟아지는 범죄 뉴스는 서로를 의심하며 거리 두게 했고, 이웃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최근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손편지’ 한 장이 이웃의 의미를 다시 묻게 했다. 갓난아기가 밤마다 울음을 터뜨려 주민들께 죄송하다는, 초보 부부의 조심스러운 진심이 담긴 글이었다. 누군가의 배려에서 시작된 작은 문장은 또 다른 문장을 불러왔다. ‘우리 모두 울면서 자랐습니다.’ 축하, 공감, 응원, 배려가 낯선 이웃들의 글귀 사이로 차곡차곡 쌓였다. 견고한 벽은, 뜻밖에도 아주 작은 진심으로부터 허물어진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는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 두기가 나를 지키는 벽이 아니라, 나를 가두는 벽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번 방송에서는 ‘이웃포비아’라는 불안한 시대적 풍경 속에서도 또다시 생겨나는 희망을 조명한다. 아기 울음소리를 소음이 아니라 축복으로 바라본 사람들, 진심을 건넨 이웃들의 이야기가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가는 시대에 작은 용기의 씨앗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