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748회 100년 씨간장·어간장·어육장·천리장, 깊은 장맛

식탁의 중심을 지켜온 전통 간장, 그 속에 담긴 씨간장과 어육장의 묵직한 역사를 조명할 예정이다.
4월 2일 방송될 KBS1 ‘한국인의 밥상’ 748회에서는 종가의 100년 씨간장부터 여수의 멸치 어간장, 완주의 귀한 어육장까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특별한 장맛의 세계가 공개될 전망이다.
100년 씨간장 종가, 장 담그는 날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충청북도 청주 청원구 내수읍. 1,000여 개 장독이 계절의 볕과 바람을 품으며 한 집안의 시간을 익혀가는 곳, 이맘때면 장을 담그고 가르느라 분주한 조정숙(67세) 씨 모녀의 집이다. 종갓집에 시집와 시어머니에게 100년 씨간장을 물려받은 조정숙 씨는 해마다 햇장에 씨간장을 더하는 첨장으로 집안의 장맛을 이어왔다. 딸 변수정(31세) 씨도 이제는 엄마 곁에서 그 고된 시간을 함께 견디며 대를 잇고 있단다.
짚불로 항아리를 소독하고, 옛 방식으로 소금물을 내리고, 메주를 담가 장을 담그는 일은 그 자체로 집안의 한 해 농사이자 의식이다. 두 달 남짓 익은 장을 가르는 날이면 메주는 된장이 되고 맑은 장물은 햇장이 되며, 시간이 쌓일수록 간장은 청장과 진장으로 깊이를 더한다. 그렇게 빚어진 장맛은 ‘된장깻잎나물찜’, ‘전복소고기진장조림’, ‘간장육전’으로 이어져 종가의 밥상 위에 오른다. 해마다 새 생명력을 얻으며 이어지는 씨간장의 시간, 그리고 그 장맛을 닮아가는 모녀의 이야기를 만난다.
어간장, 바다를 품다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의 호두마을에서는 멸치가 한창 오르는 계절이면 마을 가득 간장 달이는 냄새가 번진다. 이곳 간장의 주인공은 메주가 아니라 멸치다. 2~3년 삭힌 멸치젓을 걸러 얻은 젓국물을 달여 만드는 ‘어간장’, 바다를 통째로 농축한 이 마을의 별미장이다. 시어머니에게 배운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박은후(60세) 씨와 멸치 배를 타며 가업을 잇는 가족의 삶 속에서 어간장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바다 사람들의 세월 그 자체가 된다.
굵은 멸치에 소금을 켜켜이 버무려 오래 삭히고, 그 젓국물을 뭉근히 달여낸 어간장은 짠맛은 차분해지고 풍미는 더욱 깊어진다. 그렇게 완성된 어간장은 ‘어간장굴미역국’에 들어가 진한 바다의 감칠맛을 더하고, 갓 잡은 생멸치를 조려낸 ‘어간장멸치조림’에는 만선의 기억과 가족의 고단한 삶을 함께 녹여낸다. 봄기운 머금은 ‘어간장머위무침’ 또한 어간장 하나로 맛을 완성한다. 여수의 바다와 고부의 손맛, 그리고 한시도 쉬지 않고 살아낸 바닷가 사람들의 시간이 어간장 한 방울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천리(千里)와도 같은 긴 인생을 달이다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경천면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간장독이 마당 위가 아닌 땅속에 묻힌 집이 있다. 땅과 바다, 들의 귀한 재료들을 모두 품은 어육장(魚肉醬) 때문이다. 소고기, 닭, 꿩, 숭어, 전복, 멸치, 홍합 등 육해공의 재료를 메주와 함께 담아 땅속에서 1~2년 동안 숙성하는 어육장은 파평 윤씨 가문에 내려오는 귀한 내림장이다. 여기에 더해 ‘천리를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천리장(千里醬)까지, 이 집의 장독에는 오랜 세월 이어온 특별한 장맛이 담겨 있다. 윤왕순(76세) 씨는 몸이 불편해 거동이 쉽지 않은 지금도 이 귀한 장들을 놓지 못 한다. 손이 많이 가고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지만, 해마다 장을 돌보고 달이는 시간은 그에게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손이 많이 가는 장 담그는 날이면 동생들은 자연스레 언니의 손발이 되어 곁을 지킨다. 힘든 줄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던 지난날의 마음과, 이제는 함께 짊어지려는 마음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어머니가 떠난 뒤, 이 집은 동생들에게 다시 ‘친정’이 되었다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떠올리며 이제는 언니의 장으로 그 맛을 이어간다. 어육장으로 맛을 낸 ‘어육장콩비지돼지등뼈탕’, 향긋한 ‘달래어육장’과 ‘시래기밥’, 천리장으로 무쳐낸 ‘천리장닭무침’까지. 그렇게 제 삶을 달여온 한 사람의 인생이 장맛이 되고, 그 장맛은 다시 가족의 밥상이 된다. 음식도 인생도 그렇게 장독 속에서 조용히 익어간다.
윤왕순 명인의 어육장은 메주와 고기가 섞여 물러진 된장을 갈라내고, 깊은 풍미가 스며든 맑은 간장만을 걸러내 완성하는 특유의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천리를 가도 상하지 않는다는 천리장은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이 챙겨가던 귀한 내림장으로, 고도의 숙성 기술과 오랜 정성이 요구되는 전통 제조법임이 함께 소개될 전망이다.
단순한 양념을 넘어 한 가족의 인생과 고단한 세월이 농축된 전통 간장의 진정한 가치를 이번 방송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