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정년이’ 실제 모델 조영숙과 3세대 예인들의 찬란한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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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의 1세대 명인과 30대의 3세대 제자들이 사라져가는 무대를 지키기 위해 전 재산과 열정을 바치는 감동적인 투혼이 공개된다.

3월 6일 금요일 오후 11시 30분 방송되는 KBS1 ‘독립영화관’에서는 195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여성국극의 명맥을 잇기 위해 분투하는 세 예인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가 전파를 탄다.

□ 방영작품 :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지듯 영원하다>
□ 방송일시 : 3월 6일 금요일 밤 23:30~ (KBS-1TV)
□ 방영작품 정보

  • 감독 : 유수연
  • 출연 : 조영숙, 박수빈, 황지영
  • 촬영 : 김지영, 유수연
  • 사운드 디자인 : 표용수
  • 음악 : 장영규
  • 편집 : 김형남
  • 프로듀서 : 이진숙
  • 크리에이터 : 허혜정
  • 제작 : 더액티비스트
  • 개봉 : 2025년 3월
  • 장르키워드 : 다큐멘터리

□ 줄거리
누군가에겐 잊혀진 무대, 누군가에겐 영원한 꿈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3세대 여성국극인 박수빈과 황지영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1세대 여성국극인이자 ‘정년이’의 실제 주인공 조영숙과 함께 만들어가는 특별한 춘향전. 웃음 속에 담긴 진심이 무대 위에서 빛나는 순간. 모든 경계를 허물고 무대 위에 피어난다!

□ 유수연 감독 연출의도
2021년, 감독인 나는 판소리 다큐멘터리 <수궁>을 제작하면서 여성국극인 조영숙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조영숙은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여성국극 무대 위에서 남자로 보내온 여배우였고 개인의 삶 자체가 여성국극인 역사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내 조영숙의 삶과 예술의 길에 함께 하는 두 명의 제자인 박수빈과 황지영을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선택지가 많은 재능 넘치는 젊은 예술가지만 기꺼이 여성국극 배우의 길을 가고 있다. 여성국극 1세대 배우들과 같이 무대에 섰고 직접 여성국극을 사사 받은 유일한 두 제자는 현재 무대에 서고 싶지만 기회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본인들이 여성국극을 하기 위해 2020년부터 ‘여성국극제작소’를 만들어 명맥을 잇고 있다. 이들 역시 과거 스승이 그랬듯, 캠핑카에 거주 및 이동을 하며 전국을 돌고 있다.

어쩌면 현대 대중문화에서 가장 변방에 있을 법한 이 예술을 실현하는 여성국극 배우들이 누구도 알아줄 것 같지 않은 이 장르에 자신들의 전 생애를 바쳐온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전통과 현대라는 극명한 차이와 한계 속에서도, 여성국극을 지키고 이어가려 하는 세 예인의 열정과 집착이 궁금해졌다. 이 여정에 함께 하면서 여성국극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과 가치는 물론, 함의하고 있는 본질의 의미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어쩌면 삶과 공연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이들의 노마드적인 삶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코 쉽지 않은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이 길의 끝은 과연 무엇일까?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예술과 철학 부재의 시대, 어쩌면 이 여성국극인들의 삶과 이야기들은 우리의 이와 같은 현재를 재인식케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착하지 않고 멈추지 않으며 끊임없이 이동하고 부유하는 이들의 삶은 아마도 주류 질서의 해체와 균열의 가능성일 수 있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채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보수와 진보”, “남자와 여자”. “예술과 비예술”, “미학과 반미학”, “무대와 무대 밖”, 그 경계 어디쯤에서 삶과 예술을 철저하게 고민하며 부유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족쇄를 차고 남장을 하며 소리를 내고 춤춰왔던 여성들. 그들은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선하다고 믿었던 것, 아름답다고 여겨왔던 것, 그리고 주류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다른 가능성들을 이야기했다. 이 힘의 근원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예술이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해 주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우리의 현재에서 타진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1950년대 여성국극이 전쟁을 겪은 우리를 위로했듯 2025년도의 관객 역시 이 예인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진심으로 위로받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 <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 인디그라운드 리뷰
존재의 증명, 그 고단함과 찬란함에 관하여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을 막 완성했을 때다. 주인공인 여성국극인 조영숙, 김혜리, 허숙자, 이옥천 선생님을 모시고 처음 시사회를 열었는데, 다들 영화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다. 전성기의 멋지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여성국극을 ‘망해가는 집구석’처럼 쓸쓸해 보이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1948년 여성 명창들의 무대를 시작으로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여성국극은 여자들이 모든 배역을 도맡아 연기하는 국악 뮤지컬이다.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이야기와 화려한 무대, 남자 역 배우들이 가진 묘한 매력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당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요즘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 문화와 사극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54년 한국 영화가 15편 제작되는 동안 여성국극은 24편의 신작이 발표되었고, 쇠퇴기에 접어든 1960년대 초반에도 전국에서 활동하는 13개 국극 단체 중에 여성국극이 아닌 남녀 혼성단체는 단 하나 존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국극은 오랜 시간 역사 속에서 잊혀 있었고, 존재조차 몰랐던 후인이 그 흔적을 좇을 즈음엔 너무나도 힘겹게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성국극을 생생히 경험한 1세대 배우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그 기억을 복원하고 기록하는 일이 시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여성국극이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공연 하나 보기 힘든 현실 속에서 다음 세대로 여성국극이 이어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다큐멘터리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유수연 감독, 2024)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에 도전하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전통과 현재를 이으며 여성국극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3세대 여성국극인 박수빈과 황지영의 여정을 다룬 영화다.

‘여성국극 황금기로 돌아가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는 수빈과 지영의 얼굴로 영화는 시작한다. 1세대 배우들이야 화양연화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후회가 없다지만, 그 시절의 ‘맛’을 본 적 없는 3세대 청년들이 여성국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빈은 여성국극이 ‘날 닮아서’라고 말한다. “여성국극은 평생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잖아요. 나도 나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그게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아니까. 그럼에도 존재하는 여성국극이 나 닮아서. 그냥 여성국극이라는 걸 기억해 주고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호명되지 않고, 기억되지 못한 존재, 소수자와 변방의 존재들은 언제나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고된 과정을 겪는다. 수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드라마 <정년이(2024)>의 인기와 함께 체감하게 된 변화가 떠올랐다. 그건 애써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의 당연함’이었다. 지영은 왜 여성국극을 하냐는 질문에 ‘그냥 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뮤지컬 하는 사람이 있고 정악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성국극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국극제작소를 차린 둘은 3년은 해보자며 캠핑카를 타고 전국의 축제와 공연장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현실은 험난하기만 하다. 텅 빈 객석, 공연 도중 등을 돌리는 관객들, 열악한 무대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애써 끼를 부리며 관객들을 위해 흥을 돋운다. 수빈과 지영은 어린 시절부터 전문 훈련을 받아온 소리꾼이자, 1세대 배우 조영숙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봐온 여성국극인이다. 지영은 8살부터 조영숙 선생에게 판소리와 여성국극을 함께 배우며 여성 주연 배우로 자랐고, 남역을 주로 연기하는 수빈은 14살에 향단이 역할로 데뷔하면서 조영숙 선생을 만났다.

조영숙 명인은 대배우 임춘앵에게 직접 사사받은 삼마이(웃음을 주는 조역배우) 전문 여성국극인이다. 한국전쟁 시절 단신으로 이북에서 피난을 온 여장부이자, 또랑또랑한 기억력으로 전성기 시절의 여성국극과 임춘앵 선생에 대한 일화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제자를 가르치고 여유가 묻어나는 몸짓으로 직접 무대에 서는 조영숙 선생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따뜻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

잠잘 때도 여성국극 꿈을 꾼다는 조영숙 선생은 옛 대본을 찾아보는 중에 문득 눈물을 터뜨린다. 수빈은 “이렇게 가다가는 여성국극을 했다는 것도 선생님 말씀으로 끝나고, 몇십 년 동안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여성국극을 배운 제자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끝나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선생님이 살아 계신 동안 여성국극으로 큰 무대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후로 영화는 수빈과 지영이 여성국극 무대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따라, ‘무(無)’에서 시작한 <여성국극 레전드 춘향전〉이 ‘유(有)’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다. 또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공연 실황을 담아 놓았는데, 이는 여성국극 무대를 실제로 접할 수 있는 귀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특히 춘향과 몽룡 역을 1세대와 3세대 배우로 더블 캐스팅해 공연 속에서 교차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공연 이후 ‘여성국극제작소’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단체로 선정된다. 이 사실을 조영숙 선생에게 알리는 수빈과 지영, 둘에게 고맙다 말하는 조영숙 선생. 그들의 조용한 포옹 속에 그동안의 설움이, 그럼에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그 험난함을 뚫고 나가는 제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모두 녹아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선보이는 작품 <여성국극 삼질이의 히어로>가 눈길이 갔는데, 기타와 판소리가 어우러진, 여성국극을 이어가면서도 굳이 과거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쾌한 전복의 몸짓과 소리가 수빈과 지영의 성장을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남은 자취와 전설처럼 전해지는 구전을 따라,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과거의 영광을 불러내고, 재현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삶은 어쩌면 불필요한 고행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93세와 93년생이,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쌓아가는 시간과 연대의 에너지는 인스턴트 시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찬란함일 것이다.

수빈과 지영의 성장기를 보며, 이런 이들이 있다면 여성국극은 그야말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사라지지 않고 영원할 것 같다.
(글:김혜정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

특히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는 박수빈과 황지영 배우가 ‘여성국극 레전드 춘향전’ 무대를 기획하는 치열한 백스테이지 현실이 여과 없이 공개된다. 변변한 연습실이나 탈의실이 없어 캠핑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면서도, 아흔이 넘은 조영숙 명인을 다시 무대에 세우기 위해 발로 뛰며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처절하고도 숭고한 노력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전통을 지켜내는 이들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할 전망이다. 한편, 찬란한 예인들의 무대를 담아낸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는 3월 6일 오후 11시 30분 KBS1 ‘독립영화관’에서 방송되며, 오는 3월 19일 전국 극장에서도 정식 개봉한다.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