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로 이어진 인연
36.5도의 따뜻한 기적을 선물하다
▶ 절체절명의 순간, 사람을 살리는 피
작가이자 강연가 우은빈 씨는 미끄럼 사고로 긴급 뇌수술을 했다. 하지만 AB형이 부족했던 때라 혈액이 도착하기 전까지 4시간을 기다리며 위급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 주부 정선옥 씨는 분만 시 대량 출혈로 자그마치 37개의 혈액 팩을 수혈받으며 아이를 낳았다.
사고나 수술로 인한 과다 출혈, 암 진단, 백혈병.. 우리에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위기의 순간, 혈액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첨단의 과학기술로도 만들어낼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피. 그래서 우리는 헌혈을 해야 한다. 헌혈은 자신의 피를 대가 없이 기부하는 행위.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선물하며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 5%의 헌혈, 그들은 누구일까?


우리나라의 헌혈 참여율은 전 국민의 약 5% 수준, 거기에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헌혈량은 필요한 양에 비해 점점 더 부족해 지고 있다. 특히 동절기가 시작되면 헌혈자가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 혈액 수급에 적신호가 켜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헌혈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다. 20대 청년 이동희 씨의 헌혈 횟수는 올해로 90회,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자신의 피가 누군가의 생명을 지켜준다는 사실에 정기적으로 헌혈을 시작했다.
지난해 헌혈 정년을 맞은 정 길 씨는 지금까지 200회의 헌혈을 했다. 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인해 시작한 일, 그는 한 달의 두 번, 헌혈을 위해 일정을 관리하고 식단까지 조절하며 살아왔다. 나에게는 무해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일이라는 시간을 선물하는 믿음이 그들을 움직였다.
▶ ‘피가 부족해’ 생긴 의료진의 고뇌

어둠이 내린 도시,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외상센터. 이곳에 들어오는 외상환자들의 주요 사망원인은 대량 출혈,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상황 속에서 혈액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된다. 하지만 혈액은 한정된 자원,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와 혈액 재고를 고려해 신중하게 분배해야 한다. 이미 팬데믹 상황에서 최악을 경험했던 터, 언제든 피가 모자랄 상황에 대비해 부족한 혈액 앞에서 끊임없이 고뇌한다.
병원의 또 다른 곳, 혈액 센터에서는 백혈병 등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수십 가지 검사를 한다. 같은 혈액형이어도 맞지 않을 수 있고, 환자의 특이 사항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혈액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나눔을 안전하게 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쉴 틈 없이 하루를 반복한다.
▶ 피로 이어진 인연, 36.5도의 뜨거운 만남


과거 수혈을 통해 생명을 구한 소영환 씨와 우은빈 씨.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헌혈을 하는 걸까’ 많은 의문을 품고 헌혈 버스에 오른다. ‘헌혈 서포터즈’로 하루를 보내며 수많은 이유로 헌혈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결국엔 피가 자신에게 사랑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수혈자였던 소영환 씨는 생애 첫 헌혈에 참여하며, 헌혈자 대열에 오른다.
한편 마포구의 한 공연장, 다회 헌혈자들을 위한 문화 행사에 특별한 손님이 초대됐다. 재생불량성빈혈로 수혈을 받았던 김주효 씨. 그는 500회 넘게 헌혈한 김일정 씨를 만나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헌혈은 단지 한 사람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지인까지 함께 살리는 일이라며 ‘의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주효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36.5도의 조용한 기적을, 수혈자와 헌혈자의 뜨거운 만남을 통해 확인한다.
인생의 세찬 바람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건, 결국엔 당신과 나라는 존재.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마음을 나누고 그로 인해 세상은 더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