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4일에 방송된 EBS1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는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 박종서가 TV 디자이너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전향한 과정과 대표 모델의 탄생 비화, 은퇴 후 후배 양성에 나선 사연을 공개했다.
TV 디자이너에서 H사 1호 자동차 디자이너로
故 정주영 회장부터 정몽구 회장까지 역대 회장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으며 H사의 역사를 함께 썼고, K-자동차 디자인의 시대를 열었다. 박종서는 가전제품 회사의 TV 디자이너로 디자인에 첫발을 들였다.
그러던 중 한 유명 잡지에 실린 것을 계기로 故 정세영 회장의 눈에 띄었고, 33세의 나이에 H사 1호 자동차 디자이너로 발탁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회장의 권유로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다.
다른 학생들이 쓰고 버린 검정 테이프를 주워 자동차 도면을 그렸고, 생활비가 부족해 벤치에서 인스턴트 빵으로 끼니를 대신하면서도 꿈을 향한 열정만큼은 꺾이지 않았다.
티뷰론·스쿠프·아반○에 담긴 디자인 철학
박종서의 대표작에 얽힌 비화도 공개돼 흥미를 더했다.역동적인 상어의 곡선을 구현한 티뷰론은 그가 회사의 거센 반대를 뒤집고 완성한 역작 중의 하나였다. SUV 디자인의 상징으로 꼽히는 싼타○ 역시 세계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낸 박종서의 안목이 빚어낸 결과였다.
자동차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 팀을 꺾고 탄생한 스쿠프는 복잡한 기교 대신 심플함을 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이는 자동차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디자인의 저력을 세계에 각인시킨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수많은 히트작 가운데 박종서가 꼽은 최고의 흥행작은 아반○였다. ‘도깨비 눈’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램프 모양으로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아반○에 대해 그는 “뒤에서 따라오는 차가 봤을 때 여우의 눈매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디자인의 자립을 이끌며 자동차 디자이너 최초로 임원 자리까지 올랐지만, 박종서는 “수억 원에 달하는 성과금을 받은 적도 있지만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 전부 나눠줬다”고 밝혀 놀라움을 더했다.
뇌종양 시련 이후 후배 양성에 쏟은 100억 원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박종서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쳤다. 어느 날 얼굴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이상 증세가 나타났고, 진단 결과는 뇌종양이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한쪽 얼굴의 감각과 청력을 완전히 잃게 된 그는 결국 57세의 나이에 젊음을 바쳤던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렇다고 그의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박종서는 사비 100억 원을 투자해 자동차 디자인의 기본 원리부터 실전까지 접할 수 있는 ‘자동차 공장’을 설립해 후배 디자이너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디자인의 힘이 나라를 부자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 속에서 대한민국 자동차 디자인의 미래를 향한 깊은 사명감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박종서는 “저는 26년 된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만, 제가 만든 자동차들이 밑거름이 되어 대한민국을 일으킬 디자이너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는 진심을 전하며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남이 버린 재료로 자동차 도면을 그리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후배들이 배울 공간을 마련한 박종서. 그의 뒤를 이을 디자이너들은 어떤 자동차를 만들어낼까?
사진 :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